나눔 31편: 나의 사랑

눈 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 투성이였어
가시 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김승희/ 장미와 가시中>

어느날 아내가 본인 이야기는 찬양/간증 집회 다니며 나누는 나눔의 스토리에 넣지 말라 부탁 했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내 아내를 향한 나의 마음을 살짝 오픈 하려 한다. 아니 아내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려 한다. 

이제 나에게는 아내를 이 세상에서 사랑해 줄수 있을 날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내는 서울 사람이며 청와대 바로 옆동네에서 살았고 나는 부산에서 초등 학교 4학년까지, 전남 보성과 광주에서 초등 학교 6학년 마치고 드디어 서울에 입성해 중학교부터 대학 졸업과 군 복무 마치고 미국에 이민 올때까지 서울에 살았다. 

우리는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공부를 마쳤고 대학 시절에는 따로 놀다가 졸업 후 내가 군대 가기 전 몇개월 전부터 데이트 하기 시작 하였다.

내가 군 복무 3년 6개월을 마친후 미국에 이민 오기까지 아내는 나만 사랑하며 기다리셨다고 한다. 의리의 서울 여자! 나는 아내의 말을 그대로 믿기로 열심히 노력 한다. 

나 역시 주님 다음으로 아내를 사랑하며 살아 왔다. 아주 가끔 아내를 주님보다 사랑한 적이 있어 주님께 죄송하다고 말씀 드린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대한 민국 남쪽 바닷가에서 놀던 촌놈을 서울까지 가게 하여서 아내를 만나 평생을 함께 주님과 동행하게 하신일은 결코 주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의 길이었음이 분명 하다.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아내와 나만 데이트를 한것이 아니라 주님과 셋이서 데이트를 해 왔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 둘을 결혼 주례 하시고 거기서 그치지 않으시고 우리 부부가 본향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매 걸음 걸음마다, 굽이 굽이, 골목 골목마다 우리 부부의 길잡이가 되어 주신다.
주무시지도 않으실 정도로 바쁘신 그 분, 십자가에서 우리 부부 구원 하시려고 목숨까지 내어 놓으신 그 분이 이렇게까지 아니 하셔도 되는데 우리 부부의 손을 놓을수가 없으시다 하신다. 나는 이렇게 멋진 주님이 미치게 좋다. 

아내의 마음에 내가 살짝 들어간 사건은 대학교때 학과 졸업 여행시에 당시에 나와 듀엣으로 활동 하던 내 친구와 함께 작은 콘서트와 모든 순서의 사회를 내가 보게 된 사건이 싹이 되고, 내가 그 당시 꾸던 꿈 중에 하나인 이웃을 사랑하는 일 (고아들과 어려운 분들을 섬기려 하던)이 그녀를 살짝 감동 시켰던 것이다.

한국인이 가장 못 믿는 사람은 바로 ‘남편’이라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번 빅데이터는 최근 3년 5개월간 국내 인터넷 블로그와 커뮤니티에 올라온 5억 3000만 건의 글을 토대로 추출한 정보다.
자료에 따르면 ‘의심되는 사람 톱 10’의 1위는 ‘남편’이 차지했다. 반면 ‘아내’는 10위권 내에 들지 않았다.
‘남편’뿐 아니라 ‘아빠’도 8위에 올랐다. 결혼한 한국 성인 남성은 아내와 자식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못 믿겠다는 ‘남편’에 이어 의심되는 사람은 ‘친구(2위)’와 ‘직원(3위)’이었다. 전문직 종사자 중에는 유일하게 ‘의사(6위)’만 10위권에 들었다.
이어 ‘거짓말쟁이 톱 10’에서는 ‘엄마’가 2위를 차지했다. ‘대학 가면 예뻐진다’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해 줄게’ 등의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 부문 1위는 ‘친구’였고, ‘남편’은 여기서도 3위에 올랐다.

나도 남편이자 아빠니까 예외는 아니라 본다. 아내가 우리 아들을 먼저 천국에 보내고 내가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전 아내는 그야말로 성품이 너무나 고왔으나 이런일이 발생한후 아내의 성격이 다소 예민해진 점이 나에게 가장 가슴 아픈 일이다.

내가 36세에 장로가 되어 젊었을때 부터 아내의 수고와 고충이 많았고 내가 위기에 있었을때 나의 곁에서 함께 내 손 붙잡고 주님 등에 업혀 오늘까지 나를 가장 사랑해 주며 보살펴 준 아내에게 감사와 사랑의 카드를 이시간 쓴다.

사랑해 여보, 당신이 내 아내이자 친구인게 너무 자랑 스러워!

여보, 우리 함께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러나 예수님만 바라보고 있지는 말자.
예수님이 바라보는 곳도 함께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