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27편: 주님의 계획과 나의 발자취

(이번 나눔은 오해 하시면 제 자랑이라 생각 하시기 쉬우나 결코 그렇지 않고 부족한 나를 어떻게 훈련 시키시고, 세우시고, 인생의 굽이 굽이마다 골목 골목 마다 동행해 주시는 주님을 자랑하고 싶어서 씁니다)

나는 모태 신앙을 갖고 태어 났으나 구원의 확신을 스스로 깨닫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 고교 2학년 시절 이었다.

기도를 많이 하시는 나의 부모님은 우리 집에 기도실을 따로 두고 혼자 예배 하시거나 기도 하시곤 하였다. 그리하여 나에게 까지 차례가 오기란 어려워 거의 포기 하였다. 일명 눈물의 방, 통곡의 방이라 나는 이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내가 사용할 기회가 왔고 기타를 치며 그 당시 유행 했던 복음 성가곡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를 부르기 시작 하였는데 약 1시간 동안 이나 계속 이 찬송만 부르고 있었다.

나는 고교 1학년때부터 독창이나 남성 4중창, 성가대로 봉사 하고 있었기에 꽤나 특송도 하고 여러 곡을 알고 있어서 1곡을 그렇게 오래 부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 날은 온전히 성령에 이끌리어 기도 하다, 찬양 하다가 회개의 눈물이 방바닥을 적실 정도였다. 

나의 생애에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밤이었다. 그런데 나의 마음에 세상이 한번도 주지 못했던 평화가 몰려 옴을 체험 하며 가슴이 따뜻하여지고, 예수님의 사랑 같은 그 무엇을 경험 하게 되었다.

나는 원래 수줍음이 많고 여러 사람 앞에 서면 떨리고 가슴이 두근 거리는 내성적인 소년 이었다. 그런데 주님 께서 훈련을 시키기 시작 하셨다. 초등 학교 시절부터 지도자 교육을 시작 하셨다. 반장으로, 회장으로, 교회에서는 그 당시 서울에 대형 교회에서 고등부때 회장, 노회 학생 회장으로 뺑뺑이를 돌리며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시었다.

나의 친구를 통하여 기타도 선물 받게 하시고 친구와 대학 시절에 듀엣 활동도 하게 하여서 그냥 우연히 이런 일이 나에게 이어지는것으로 생각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주님의 치밀한 계획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1977년, 내 나이 26세때 미국으로 이민 오게 하시고 교회나 부흥회, 결혼식, 장례 예배등 여러 행사때에 찬양 하게 하시더니 섬기는 교회에서 성가대,  찬양팀 리더, 찬양 위원장으로 섬기게 하시고 찬양/간증 사역자로 수 십년 동안 사용 하셨다. 

동시에 전혀 자격이 없지만 시무 장로까지 맡기시어 주와 함께 동역하게 배려해 주심에 너무 황송하고, 내 생각대로 기도 없이 했던 때에 너무 죄송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나를 가르치시며 지혜를 주시고 믿음과 힘과 용기를 주신 주님의 인내, 수고와 은혜와 사랑이 100% 이었다. 내 몸으로 떼운것은 0.1% 정도 되려나?

한국 육군에서 근무할때 장교로 국가에 충성하고, 미국에서는 컴퓨터 Hardware 와 Software engineer 로 수년간 봉사 하다가 주님의 때에 관리자로, 매너저로 승진 시켜 주시어 오랫동안 일하다가 2016년에 65세로 은퇴 하였다. 

내 이름이 행정이어서 어떤이들은 내가 행정을, 관리직을 잘 수행할것이라고 말했으며 나도 은사가 있다고 생각 하였으나 미국인들처럼 영어를 잘 할수도 없으며 관리직으로 높이 올라 갈수록 지혜와 지식과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자들이 너무 많아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였고 나름 어려움도 시기도 많았으나 신실하신 하나님, 단 한번도 내 곁을 떠나지 않으신 분이 계셨기에 아름다운 은퇴를 하게 되었다.

주님께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세세토록 올리며 주님 뵈올 그 날까지 오늘도 나는 달려 가련다!